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룬제 군사대학 쿠데타 모의 사건 (문단 편집) === 진압 === [[러시아]]는 [[소련]]에서 [[공부]]한 유학생들을 통해 이런 사실을 미리 파악했다. 첫 쿠데타 음모가 실패하자 기존 [[KGB]]의 한 [[간부]]였던 [[사람]]이 당시 러시아 [[대사]]였던 [[손성필]]에게 쿠데타 모의를 고발했다. [[김정일]]은 프룬제군사아카데미 유학생 출신들이 "[[은혜]]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들"이라고 분노하면서 [[조선인민군]]의 [[방첩기관]]인 [[보위국|인민군 보위국]][* [[남한]]으로 치면 [[군부독재]] 정권 시절 [[국군보안사령부]] 정도에 해당한다. [[국가안전보위부]]와는 다른 기관이다.]에 이들을 무자비하게 소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. [[1993년]] [[2월 8일]] 인민무력부 8호동 회의실에서 중대회의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유학생들이 도착하자 인민군 보위국 국장 [[원응희]]가 지휘하는 작전조를 투입했다. [[조선인민군 총참모부|총참모장]] [[최광]]과 [[보위국|보위국장]] [[원응희]]가 주최한 이날 회의에서 [[최룡해]]의 매부였던 인민군 부총참모장 홍계성 상장과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 강영환 중장, 재정국장, 통신국장, 교육국장 등 장령급 지휘관 70여 명이 체포되었다. 이때부터 [[1998년]]까지 5년간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유학생을 대대적으로 [[숙청]]했다. [[인민무력부]] 총정치국과 [[조선인민군 총참모부|총참모부]]는 물론이고 각 [[군단]], [[사단]], [[여단]]의 모든 소련 유학생 출신들이 모두 조사를 받았고 [[모스크바]] 주재 북한대사관 무관 김학산 중장과 부무관이었던 최수연 대좌도 [[1997년]]에 체포되었으며 [[1993년]] 말 김책공군대학에서 재직하던 유학생 17명은 [[평양역]] 부근에서 크게 저항해 인민군 보위국 1개 [[중대]]가 동원되어 겨우 제압했다. [[김정일]]의 지시에 따라 보위국은 북한의 주요 [[도시]]들을 검열했는데 [[1998년]] [[량강도]] [[혜산시]]에서만 2백여 명의 당, 행정, 사법기관 간부들을 [[공개처형]]하거나 비공개로 살해했다. 당시 량강도 보안국 리성훈 수사처장은 망치로 살해당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